실상사

  • 주소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길 94-129(실상사)
  • 전화 : 063-636-3191

지리산 실상사 템플스테이

실상사 지리산 자락이 감싸 안은 듯 평화롭고 풍요로운 고을 남원시 산내면에 천 년 고찰 실상사(實相寺)가 있습니다. 지리산의 북쪽 관문인 인월에서 심원, 달궁, 뱀사골 방면으로 향하다 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 마천 방면으로 가다 보면 만수천(萬壽川)변에 호국사찰로 천 년의 세월을 버티고 지내온 실상사가 나타납니다. 만수천과 뱀사골 방면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만나는 지점이 산내면 면소재지, 즉 인월에서 뱀사골 방면으로 가다 보면 나타나는 삼거리 부근입니다. 이 삼거리에서 동쪽을 보면 천왕봉이 손에 닿을 듯 눈 앞에 선합니다. 그 발 아래 산내면 입석리 들판이 넓게 펼쳐지는데 그 곳에 실상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실상사는 지리산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만수천을 끼고 풍성한 들판 한 가운데 위치해 있으며 동으로는 천왕봉과 마주하면서 남쪽에는 반야봉, 서쪽은 심원 달궁, 북쪽은 덕유산맥의 수청산 등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인 채 천 년 세월을 지내오고 있습니다.

대부분 우리나라의 사찰이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는데 반해 지리산 자락의 실상사는 들판 한가운데 세워져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지리산 사찰 중 평지에 자리한 절은 이곳 실상사와 단속사가 있는데, 단속사는 폐허가 된 채 석탑만 남겨져 있는데 반해 실상사는 여전히 사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개관 천 년 사찰, 호국사찰로 잘 알려진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興德王) 3년(서기 828년) 증각대사 홍척(洪陟)이 당나라에 유학, 지장의 문하에서 선법(禪法)을 배운 뒤 귀국했다가 선정처(禪定處)를 찾아 2년 동안 전국의 산을 다닌 끝에 현재의 자리에 발길을 멈추고 창건했습니다. 증각대사가 구산선종(九山禪宗) 가운데 최초로 그의 고향인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에 절을 세운 것입니다. 증각대사의 높은 불심을 높게 기린 흥덕왕이 절을 세울 수 있게 해줬고 왕은 태자선광(太子宣光)과 함께 이 절에 귀의했습니다. 증각은 실상사를 창건하고 선종(禪宗)을 크게 일으켜 이른바 실상학파(實相學派)를 이루었고 그의 문하에서 제2대가 된 수철화상과 편운(片雲) 스님이 가르친 수많은 제자들이 전국에 걸쳐 선풍(禪風)을 일으켰습니다.

신라 불교의 선풍을 일으키며 번창했던 실상사는 이후 조선 시대에 접어들면서 화재로 전소됐다가 3차례에 걸쳐 중수 복원돼 오늘에 이르게 됐습니다. 세조 때(1468년) 원인 모를 화재로 전소됐다는 기록과 정유재란 때 왜구에 의해 전소됐다는 설이 동시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화재로 인해 실상사 승려들은 숙종 5년(1680)까지 약 200년 동안 백장암에서 기거했으며 절에는 철불, 석탑, 석등 등만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숙종 때 300여 명의 수도승들과 함께 침허대사가 상소문을 올려 36채의 대가람을 중건했습니다. 또 순조 21년(1821) 의암대사가 두 번째 중건을 했으며 고종 21년(1884)에 월송대사가 세 번째 중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3중건 및 창건을 하게 된 것은 고종 19년(1882) 어떤 사람들이 절터를 가로챌 목적으로 방화를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실상사는 6.25 당시 낮에는 국군, 밤에는 공비들로 점거되는 등 또 한 차례의 수난을 겪게 됐는데 용케도 사찰만은 전화를 입지 않았습니다.

천 년 세월을 보내오면서 호국사찰로 알려진 실상사에는 유독 일본, 즉 왜구와의 얽힌 설화가 많이 전해집니다. 앞서 언급한 사찰의 전소 원인을 정유재란 당시의 왜구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는 부분에서도 일본과 관련된 전설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약사전의 약사여래불은 천왕봉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천왕봉 너머에는 일본의 후지산이 일직선상으로 놓여져 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가람배치도 동쪽을 향해 대치형을 하고 옆으로 강이 흐르는 등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절에는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하면 실상사가 흥한다'는 구전이 있는데 이는 천왕봉 아래 법계사에서도 전해지고 있어 흥미를 유발합니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실상사 경내의 보광전 안에 있는 범종에는 일본 열도의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스님들이 예불할 때마다 종에 그려진 일본 열도를 두들겨 치고 있습니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 우리나라와 실상사가 흥하면 일본이 망한다는 구전에 의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스님들이 속설에 따라 범종의 일본 지도를 많이 두드린 탓에 범종에 그려진 일본지도 중 훗카이도와 규슈만 제 모양으로 남아있을 뿐 나머지 열도는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끊임 없는 망언이 있는 오늘날의 한일관계를 두고 볼 때 보광전의 범종에 얽힌 사연이 갖는 의미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합니다.

이같은 전설과 구전들을 살펴볼 때 실상사는 일본에 대한 호국사찰이며 불교문화의 큰 도량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상사에는 백장암과 서진암, 약수암 등의 암자가 있으며 이곳에는 신라 시대의 많은 문화유산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국보 제10호로 지정된 백장암 삼층석탑은 전형에 구애받지 않은 자유로운 설계로 건축돼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공예탑이기도 합니다.

실상사의 문화유적은 보물급에는 수철화상능가보월탑(33호, 905년),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34호), 석등(35호, 개산 당시), 부도(36호, 고려), 삼층쌍탑(37호, 887년), 증각대사응료탑(38호, 861년 이후), 증각대사응료탑비(39호), 백장암석등(40호, 9세기 중엽), 철제여래좌상(41호, 개산당시), 청동은입사향로(420호, 1584년), 약수암목조탱화(421호, 1782년)등 11점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지방유형문화재로는 극락전(45호,1684년), 위토개량성책(88호, 토지대장), 보광전범종(138호, 1694년), 백장암보살좌상(166호, 고려 시대), 백장암범종(211호, 1743년) 등 5점입니다.

중요 민속자료는 실상사 입구의 만수천을 가로지르는 해탈교 양쪽에 세워져 있는 석장승 3기(15호)가 그것입니다. 장승은 벅수라고도 하는데 보통 한 쌍으로 세워져 있으나 이곳 장승은 남녀를 판별할 수 없으며 만수천 양쪽에 원래는 4기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절을 향해 건너기 전에 세워진 한 쌍의 돌장승 중 오른편 장승은 1936년 홍수 때 떠내려 가고 없습니다. 잡귀를 막기위해 세워진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은 두 눈과 코가 크고 둥글며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손은 창을 든 것 같은 모습이며 대장군(大將軍)은 뒤에 만들어진 듯 이렇다 할 특징은 없습니다.

* 홈페이지 : http://www.silsangsa.or.kr


오시는 길




[실상사] 템플스테이

  • 휴식형

    [실상사] 지리산의 아침(휴식형)

    전북, 2018-09-24~2018-12-31

    남다르게 지혜로운 산, 지리산(智異山) 자락에 실상사(實相寺)가 있습니다. 실상(實相) 이란〈중론 中論>에선 '진실인 것의 모습'(tattvasya lakaam) 또는 '존재의 본질'(法性 dharmat)을, <법화경 法華經> 서품에서는 '존재의 본성'(dharmasvabhva)을 의미합니다. 1200년 전 실상사가 처음 이곳에 자리할 때는 그야말로 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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