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지층에서 감각의 결까지"
서울 관악구의 자락, 도시의 숨결이 닿는 산허리에 작고 오래된 절 하나가 있습니다.
이곳은 단지 종교 수행의 공간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과 영성 그리고 사유의 흔적이 중첩된
'살아 있는 장소'입니다.
조선 말기, 명성황후의 원찰로 중창되었던 약수사는
도시의 시간과 함께 흐르며 한 시대의 상징성과 공간의 영성을 함께 품어왔습니다.
한때는 궁궐과 민간 사이에서 불교가 어떻게 다시 살아 움직였는지를
이 작은 사찰은 조용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법당 안에는 조선시대 불화, 지장시왕도가 남아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지옥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멸하신 후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후 세계의 재판관이자,
죽은자의 영혼을 심문하는 열 명의 시왕들이 그려진 이 그림은 삶과 죽음, 윤회와 자비의 세계관을 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단지 역사를 공부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마루의 나무결과 바위의 침묵,
바람의 떨림과 오래된 불화 속 시선에
잠시 귀 기울이는 감각의 시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