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사는 장흥군 유치면 가지산 자락에 위치한 천년고찰로 인도 가지산의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삼(三)보림이라 불린다.
우리나라에 선종이 가장 먼저 들어와 정착된 선종의 종찰이며, 사실상 우리나라 조계종이 시작된 사찰이다.
통일 신라시대에는 9산 5교 중에 9산에 속하는 당시 국가대표 사찰 중에 하나였으나,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처음 이곳에 원표(元表)스님이 터를 잡을 당시인 통일신라시대 759년에는 초암(草庵)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듯 하며 현재의 위치에서 약 2km 떨어져 있었다 전한다.
연기설화(緣起說話)가 이곳을 찾는 이들을 흥미롭게 하고, 곳곳에 그와 관련된 땅 이름이 남아 있다.
그후 1세기를 지나, 가지산문의 법맥을 이어받은 체징(體澄)스님에 의하여 '보림사'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절터에 재창건된다.
체징은 신라 헌안왕의 권유로 이 산에 들어와 터를 잡고, 860년 대찰을 창건하여 가지산문의 중심사찰로 발전시겼다.
미국하버드대학 연경도서관에 있는 "신라국 무주 가지산 보림사 사적기"는 조선 초 세조3년(1457)에서 10년(1464)사이에 발간된 것으로 보림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여기에는 창건설화 가 이렇게 적혀있다.
신라의 명승 원표대덕이 인도 보림사, 중국 보림사를 거쳐 참선하던 중 한반도에 서기가 어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신라로 돌아와 전국의 산세를 살피며 절 지을 곳을 찾았다.
어느날 유치면 가지산에서 참선을 하고 있는데 선녀가 나타나더니 자기가 살고 있는 못에 용 아홉 마리가 판을 치고 있으므로 살기 힘들다고 호소해왔다.
원표대덕이 부적을 못에 던졌더니 다른 용은 다 나가고 유독 백룡만이 끈질기게 버텼다. 원표대덕이 더욱 열심히 주문을 외었더니
마침내 백룡도 못에서 나와 남쪽으로 가다가 꼬리를 쳐서 산기슭을 잘라놓고 하늘로 올라갔다.
이 때 용꼬리에 맞아 파인 자리가 용소(용문소)가 되었으며 피를 흘렸다는 피재와 청룡이 올라 갔다는 청룡리 용문등 유래가 남아 있으며 원래의 못자리를 메워 절을 지었다.
보림사는 통일신라 구산선문 가운데 가지산문의 종찰로서 고려 말까지 선맥이 이어져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스님도 가지산문에 속했다.
고려시대는 원응국사와 공민왕의 왕사인 태고 보우국사가 주석하여 선종을 진작시킨 큰 절이었고,
그 후 여러 차례 중창과 중수를 거치며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던 보림사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국보 대웅전 등 20여 동의 건물이 불타고, 천왕문과 사천왕·외호문(外護門)만이 남았다.
이후 1984년부터 추진된 복원계획에 따라 조금씩 복원되어 현재는 외호문과 사천왕문, 적광전, 대웅전, 삼성각, 명부전, 미타전, 조사전, 선원 등의 건물을 새로 지었다.
중요문화유산으로는 국보 삼층석탑 및 석등, 국보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동부도, 서부도, 보물 보조선사 창성탑, 보물 보조선사창성탑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보물 목조사천왕상
보물 석보상절25권 자비도량참법 금강경3가해와 274종의 많은 지방문화재들이 있으며, 스님들이 즐겼던 약4만평의 야생녹차 시배지와 고려시대부터 전래되어 온
전통 발효차 일종인 청태전(떡차)이 특산품으로 전하고, 사찰 뒤편의 비자림과 사찰 마당에서 샘솟는 국내 10대 약수로 유명한 보림약수가 있다.
[보림사(장흥)] 템플스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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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숲 걷기
전남,
2026-03-05~
2026-04-30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구산선문 종칠인 보림사 비자 숲속에서 충만한 기운을 느끼며, 혼자만의 호젓한 시간을 갖고, 마을을 여유롭게 하고 싶은 분들을 위하여 당일형 템플스테이를 마련했습니다.
보림사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을 따라 가다 보면 어느덧 내안에 숨어있는 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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